당근이 중고거래 앱이라는 건 이미 옛날 얘기다. 2026년 봄 현재, 당근은 낯선 사람들과 한밤중에 달리고, 감자튀김을 같이 먹고, 동네 지도를 발로 그리는 플랫폼이 됐다.

1. 당근이 달라졌다 — 중고거래에서 동네 생활 플랫폼으로
당근(구 당근마켓)은 2023년 8월 서비스명을 '당근마켓'에서 '당근'으로 공식 변경하며 방향을 선언했다. 중고거래를 넘어 지역 생활 커뮤니티 플랫폼으로 확장하겠다는 것이다. 월간 이용자 수 1,800만 명, 누적 가입자 3,500만 명의 플랫폼에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당근의 서비스 구조는 크게 세 가지다. 중고거래, 동네생활(커뮤니티 게시판), 당근모임(오프라인 모임 조직)이 핵심 축이다. 요즘 화제가 되는 것들은 대부분 동네생활과 당근모임에서 나온다.
2. 가장 뜨거운 트렌드 — 경도(경찰과 도둑) 모임
이게 뭔가
'경도'는 경찰과 도둑의 줄임말이다. 경찰팀과 도둑팀으로 나뉘어 정해진 구역에서 쫓고 쫓기는 술래잡기 게임이다. 규칙은 간단하다. 경찰이 시간 안에 일정 수의 도둑을 잡으면 경찰 승리, 도둑이 그 시간을 버티면 도둑 승리. 경찰에 잡힌 도둑은 지정 '감옥' 구역으로 끌려가지만, 잡히지 않은 도둑이 감옥에 들어와 "탈출!"을 외치면 잡힌 도둑들이 풀려난다.
어떻게 유행이 됐나
에브리타임 등 대학생 커뮤니티에서 2023년부터 소규모로 시작됐다. 2025년 하반기 숏폼 플랫폼에서 관련 영상이 급속도로 퍼지면서 전국으로 확산됐다. 당근 앱 내 경찰과 도둑 관련 검색량이 단기간에 23배 급증했고, 모임 일정 등록 건수는 15배 늘었다. 당근 앱 기준으로만 단일 모임에 2,000명 이상이 가입하는 사례가 나왔다.
가수 이영지가 참여한 경도 콘텐츠에는 10만 명 이상이 신청했고 관련 영상의 조회수는 수백만 회에 달했다. 인스타그램 릴스에는 '모르는 사람들이랑 경도한 썰' 유형의 후기 영상이 300만 회 이상 조회됐다.
실제 현장
주 무대는 공원·대학 캠퍼스 운동장·한강공원 등 넓은 야외 공간이다. 저녁~밤 시간대가 많다. 경찰팀은 동물 머리띠를 쓰거나 손전등을 들고 도둑을 쫓는다. 모임이 끝나면 뒤풀이 없이 가볍게 흩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현장에는 참가자들의 자발적 모금으로 마련된 물·핫팩·비상약품이 비치되는 경우도 많다.
참가자들 반응: "건강한 도파민에 중독됐다", "어릴 땐 이걸 어떻게 2시간이나 했죠?", "다음에 또 나갈 의향 100%다"
왜 MZ세대에게 통하는가
전문가들은 세 가지 키워드로 분석한다.
느슨한 연대: 이름도 직업도 묻지 않는다. 한 판 뛰고 가볍게 헤어진다. 깊은 관계에서 오는 감정적 부담 없이 '같이 논다'는 공통 경험만 공유한다.
디지털 반작용: 스마트폰으로만 연결되던 일상에서 몸을 쓰고 물리적 감각을 느끼는 경험이 희소성을 갖게 됐다.
외로움과 향수: 1인 가구 비중이 2025년 기준 36.1%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설문 참여자의 절반이 평소 외로움을 느낀다고 응답하는 시대에, 어린 시절 추억의 놀이로 낯선 사람과 연결되는 방식이 공감을 얻는다.
2026년 1월 이후에는 10~20대 위주에서 30대·가족 단위 참가로 확대되는 추세다. 다만 야간 소음·안전사고 우려, 일반 시민과의 혼동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3. 감튀모임 — 감자튀김을 같이 먹는 사람들
경도 열풍보다 먼저 시작된 당근 고유의 문화 중 하나다. 맥도날드 감자튀김을 같이 먹자는 취지로 모이는 모임이다. 진지하게 뭔가를 도모하는 게 아니라 감자튀김 하나를 매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가볍게 어울리는 것이 목적이다.
2026년 3월, 당근은 한국맥도날드와 공식 협업해 서울 신사역 인근 매장에서 '공식 감튀모임'을 개최했다. 참가자 50명이 모여 감자튀김을 먹고 한정 굿즈를 받았다. 기업 협찬 행사인데도 '같이 모여 즐기는 경험' 자체를 중심에 뒀다는 평가를 받았다.
4. 케첩모임 — 하인즈와의 브랜드 협업
감튀모임이 브랜드 협업으로 확장된 사례다. 2026년 4월 7일, 당근은 글로벌 식품 기업 하인즈(Heinz)와 협업해 서울 을지로에서 '공식 케첩모임'을 열었다. 감자튀김·계란말이·스팸 등 케첩과 어울리는 음식을 주제로 참가자들이 취향을 나눴다. 케첩 아티스트 전시, 소스 취향 토론 프로그램도 함께 진행됐다.
현장에 사용된 테이블·의자는 사연을 받아 소상공인에게 기부하는 방식으로 마무리됐다. 먹는 것을 매개로 처음 만나는 사람들과 가볍게 연결되는 당근 모임 문화의 특징이 잘 드러난 행사였다.
5.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 수건 돌리기
경도 모임 현장에서 워밍업으로 함께 등장하는 놀이들이다. 경도 전에 몸을 풀거나 어색한 분위기를 깨는 역할로 자리 잡았다. 단독 모임으로 열리는 경우도 있다.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는 경도보다 신체 능력 요구가 낮아 연령층이 더 넓게 참여한다. 어릴 때 놀던 방식 그대로지만, 초면의 성인들이 함께한다는 것이 묘한 감동을 만들어낸다고 참가자들은 말한다.
6. 붕어빵 지도 — 겨울마다 되살아나는 당근 전통
당근 동네생활의 가장 오래된 문화 중 하나다. 겨울철이면 이용자들이 직접 동네 붕어빵 가게 위치를 지도에 추가한다. 플랫폼이 만든 기능이 아니라 이용자들이 자발적으로 만들어간 집단 지식이다.
단순한 지역 정보처럼 보이지만, '내가 발견한 붕어빵 가게를 이웃에게 알려준다'는 나눔의 정서가 당근 특유의 동네 문화를 상징한다는 점에서 매년 주목받는다.
7. 부산시 아트러닝 챌린지 — 당근모임의 공공 협업
부산광역시가 당근과 협업해 운영한 '15분도시 아트러닝 챌린지'다. 시민들이 생활권 내 공간을 걷거나 달리며 GPS로 그림을 그리고 결과를 당근 커뮤니티에 공유하는 방식이다. 동네를 몸으로 체험하고 기록으로 남기는 새로운 형태의 지역 공동체 활동이다.
공공기관이 당근 플랫폼을 활용해 주민 참여형 캠페인을 운영하는 사례가 나타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8. 당근 AI — 말로 쓰는 후기
2026년 4월, 당근은 AI 기반 음성 후기 작성 서비스 '말로 쓰기'를 전 업종으로 확대했다. AI가 업체 방문 경험에 대해 질문하면 이용자가 음성으로 답하고, AI가 전체 내용을 정리해 후기를 자동 완성해주는 방식이다. 후기 작성의 번거로움을 줄여 동네 소상공인과 이용자 연결을 강화하는 취지다.
이 모든 것이 말하는 것 — 당근 트렌드의 공통점
지금 당근에서 일어나는 모든 트렌드에는 공통된 구조가 있다.
가볍고 일회성이다: 깊게 관계를 맺지 않아도 된다. 한 번 뛰어놀고 흩어지거나, 감자튀김 한 번 먹고 끝낸다.
몸을 쓴다: 경도,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 아트러닝. 모두 오프라인에서 실제로 움직인다.
동네가 기준이다: 전국 이용자가 아니라 내 근처 이웃이 대상이다. 낯설지만 같은 동네라는 사실이 최소한의 신뢰를 만든다.
전문가들은 이 흐름을 온라인 과포화 시대의 반작용이자, 도시 1인 가구 시대의 새로운 느슨한 연대 문화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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