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무신론자가 말기 암 진단을 받았다. 그 사람은 죽음 앞에서 신을 찾게 될까. 종교인들은 흔히 "결국 죽음 앞에서는 다 신을 찾는다"고 말한다. 무신론자들은 "그것은 두려움 때문이지 신이 실재하기 때문이 아니다"라고 반론한다. 이 질문은 단순한 논쟁이 아니다. 인간이 죽음을 어떻게 맞이하는지, 신앙이 본능인지 선택인지에 대한 깊은 질문과 연결된다.

연구가 말하는 것 — 무신론자의 임종
2019년 영국 랭카스터대학교 조너선 조나스(Jonathan Jong) 연구팀이 죽음에 대한 인식과 신 믿음의 관계를 연구했다. 자신의 죽음을 생각하게 만드는 자극에 노출된 사람들이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초자연적 믿음이 일시적으로 강화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무신론자를 포함한 전체 참가자에게서 나타난 현상이었다.
단 이 연구에서 명시적 무신론자, 즉 신이 없다고 확신하는 사람들에게서는 이 효과가 유의미하게 낮게 나타났다. 불가지론자나 종교에 무관심한 사람들에게서 더 강한 효과가 나타났다. 즉 죽음이 모든 무신론자를 신자로 만든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호스피스 현장에서 보이는 현실
임종 환자를 돌보는 호스피스 의료진과 성직자들의 경험은 연구보다 더 복잡한 그림을 보여준다.
일부 무신론자들이 임종 과정에서 기도를 요청하거나 종교적 위로를 받아들이는 경우가 있다. 그런데 이것이 신에 대한 믿음으로의 전환인지, 공포에 대한 반응인지, 아니면 가족의 감정을 배려한 것인지를 구별하기 어렵다는 것이 현장 경험자들의 공통된 이야기다.
반대로 평생 독실한 신앙을 유지했던 사람이 임종 과정에서 신앙에 대한 극심한 의심과 불안을 경험하는 경우도 있다. 이것을 영혼의 어두운 밤(Dark Night of the Soul)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마더 테레사의 개인 서신이 공개되면서 그녀가 수십 년간 신의 존재에 대한 깊은 의심과 씨름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이 대표적 사례다.
죽음 불안의 세 가지 유형
심리학자 로버트 케이슨바움(Robert Kastenbaum)은 죽음 불안을 세 가지로 구분했다.
소멸에 대한 두려움은 자신이 완전히 사라진다는 것에 대한 불안이다. 고통에 대한 두려움은 죽어가는 과정의 신체적 고통에 대한 불안이다. 사후의 미지에 대한 두려움은 죽음 이후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안이다.
종교는 주로 세 번째 두려움에 대응한다. 사후 세계를 명확히 제시함으로써 불확실성을 제거한다. 무신론자는 이 세 번째 두려움을 다른 방식으로 다뤄야 한다. 일부는 완전한 소멸을 수용하는 것으로, 일부는 자신이 남긴 것들을 통한 상징적 불멸로, 일부는 자연의 순환에 합류하는 것으로 의미를 찾는다.
무신론자들이 죽음을 어떻게 다루는가
유명한 무신론자들의 임종 기록은 다양하다. 철학자 데이비드 흄은 죽음을 앞두고 놀라울 정도로 평온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사람들이 그가 죽음을 앞두고 신앙을 고백할 것을 기대했지만 그는 끝까지 무신론적 입장을 유지했다. 작가 크리스토퍼 히친스(Christopher Hitchens)는 식도암으로 투병하는 과정을 공개적으로 기록하면서 종교적 전향에 대한 압박을 받았지만 끝까지 무신론자로 남았다.
반면 일부 무신론자들이 임종 직전에 신앙을 고백했다는 기록들도 있다. 그런데 이 사례들 중 상당수가 사후에 종교 기관에 의해 과장되거나 맥락이 제거된 형태로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는 비판이 있다.
신 믿음은 본능인가 선택인가
인지과학자 저스틴 배럿(Justin Barrett)은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초자연적 행위자를 인식하려는 경향을 가진다고 주장했다. 이것을 과잉 행위자 탐지 장치(Hyperactive Agency Detection Device, HADD)라고 한다. 진화적으로 포식자를 빠르게 탐지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고 이 과정에서 실제로 행위자가 없는 곳에서도 행위자를 감지하는 경향이 부산물로 생겼다는 것이다.
이 관점에서 신 믿음은 완전히 학습된 것이 아니라 인간 인지의 자연스러운 경향성 위에 구축된 것이다. 그렇다면 무신론은 이 자연스러운 경향을 이성적으로 극복한 상태가 된다. 죽음 앞에서의 압박이 이 극복을 흔들 수 있다는 것이 앞서 언급한 연구와 연결된다.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이 종교인의 전유물인가
연구들을 보면 죽음을 평온하게 맞이하는 능력이 종교 유무보다 다른 변수와 더 강하게 연결된다.
삶의 완결감이 첫 번째다. 자신의 삶이 의미 있었다는 느낌, 중요한 관계들이 정리됐다는 느낌, 하고 싶은 것을 했다는 느낌이 있는 사람은 종교 유무와 무관하게 더 평온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적 연결이 두 번째다. 마지막 순간에 곁에 있는 사람이 있는지가 가장 중요한 변수 중 하나다.
죽음에 대한 사전 수용이 세 번째다. 죽음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하고 준비한 사람들이 갑작스럽게 직면한 사람들보다 더 평온한 임종을 맞이한다는 연구가 있다. 이것은 종교적 실천이 아닌 삶의 태도의 문제다.
죽음 앞에서의 솔직함 — 모른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가장 정직한 대답은 모른다는 것이다. 무신론자가 죽음 앞에서 신을 찾는 경우도 있고 찾지 않는 경우도 있다. 종교인이 임종에서 믿음을 확인받는 경우도 있고 의심으로 끝나는 경우도 있다. 죽음 앞에서 인간의 반응은 단일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결국 신을 찾는다"는 주장이 무신론자를 겁박하거나 종교의 우위를 주장하는 도구로 사용될 때 그것은 사실의 문제가 아니라 설득의 문제라는 것이다. 죽음을 어떻게 맞이할지는 죽음이 오기 전의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와 분리되지 않는다.
정리
무신론자가 죽음 앞에서 신을 찾는가. 일부는 그렇고 일부는 그렇지 않다. 죽음 불안이 초자연적 믿음을 일시적으로 활성화하는 경향이 연구에서 확인됐지만 이것이 모든 무신론자에게 일어나지는 않는다. 더 중요한 것은 죽음을 잘 맞이하는 것이 종교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어떻게 살았는지의 문제라는 것이다. 의미 있는 삶, 완결된 관계, 죽음에 대한 사전 수용이 종교보다 평온한 임종과 더 강하게 연결된다.
'다양한 종교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불교·천주교·개신교·무속 — 한국의 4가지 종교 지형 완전 정리 (0) | 2026.05.04 |
|---|---|
| 한국인의 종교가 사라지고 있다 — 탈종교화 트렌드와 그 이유 (0) | 2026.05.03 |
| 컬트와 종교의 경계 — 어디서부터 위험한가 (0) | 2026.04.27 |
| 교회·절·성당을 다니면 실제로 행복해지는가 — 데이터로 보는 종교와 행복 (1) | 2026.04.27 |
| 신을 믿지 않아도 명상은 효과가 있는가 (0) | 2026.04.26 |